Posted at 2009.09.19 09:36// Posted in 스포츠이야기
 




8년간 뛰었던 유벤투스를 떠난다는 네드베드 이번 시즌이 은퇴 시즌이었지만 역시 네드베드에게는 그라운드에서 뛸 시간이 아직도 남아있는듯 하다.

아직 결정된건 없지만 네드베드의 에이전트의 말로는 이번 시즌을 끝으로 다른 팀으로 이적이 확실하다고 한다. 두개의 심장이라고 불리우는 네드베드 어린시절 두다리의 동등함을 느끼기위해 연습했던 노력파
 
그는 어릴적부터 축구에 관심이 많았던 소년이었다. 아니, 관심이라기보단 그는 축구를 본인이 해내야할 한 부분이라고 생각했던 어린 소년이었다. 19의 어린나이에 자국 체코의 군소팀인 듀클라 프라하에 입단하면서 자신이 꿈꿔왔던 프로축구선수 생활을 시작한 그는 별다른 재능은 없는 평범한 청년이었다. 하지만 그는 노력에 있어선 그 어느 선수들과는 비교할수 없는 선수였다. 그런 그의 노력 덕분이었는지 그는 첫시즌 10경기이상을 소화했고,19의 어린나이에도 불구 프로무대에서 데뷔골과 동시에 3골을 기록했다.

그런 그를 눈여겨보던 팀이 있었으니.. 그 팀은 체코의 명문구단 스파르타 프라하였다. 그는 시즌이 끝난뒤 곧장 스파르타로 짐을 옮겼다. 그런 그는 그곳에서도 최선을 다해 연습했고, 또 연습했다.

당시 네드베드曰: "나는 내가 살던 집에서 60마일이나 떨어진 축구 학교를 다녔다. 나는 하루에 12시간을 연습했고 두 다리 중 어느 한 다리가 우월하지 않다고 느낄 때 (양 발 사용이 자유로웠을 때) 처음으로 희열을 느꼈다. 스파르타 프라하 시절 나는 경기가 끝나고 나서 바로 훈련장에 가서 훈련했고 쓰러져도 다시 필드의 잔디를 잡고 일어 섰다. 나의 하루 일과는 연습장의 조명이 꺼질 때 끝났다."

스파르타에서 첫 시즌. 그는 18경기를 소화하면서 빠르게 적응해갔다.
결국 그는 스파르타에서 두번째 시즌만에 주전자리를 차지하며 20경기 이상을 소화하는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특히 그는 스파르타에서도 지금 그의 포지션인 공격형 미드필더와 윙을 오가며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고 팀을 리그우승으로 이끌었다. 23세가 되던 스파르타에서의 세번째 시즌에는 30경기에 육박하는 경기수와 미드필더로써 많은 6골을 기록하면서 주전자리를 완전히 굳혔고, 또다시 팀을 리그우승으로 이끌었다.

95/96 시즌 자신을 유럽축구계에 알리는 대활약을 펼쳤다. 스트라이커도 힘든 프로에서의 10골이상을 넣은것은 물론이거니와 프로데뷔후 최초로 30경기를 뛰면서 자신의 체력 또한 마음껏 자랑했다. 역시나 스파르타는 리그우승을 차지했다(3년 연속) 그것은 단순히 그의 단편적 활약일 뿐이었다.

1996년 유로대회가 영국에서 열렸고,체코 대표팀에는 새로운 젊은 피들이 수혈되면서 강력한 팀으로 구축됬다. 그 선수들 중엔 네드베드,스미체르,포보르스키,베르거 등등 지금의 체코를 대표하는 대스타들이 있었다. 대회의 결과부터 얘기하자면 독일이 우승,체코가 준우승을 차지했다. 특히나 예선1차전에 2:0의 뼈아픈 패배를 맞아야했던 독일과 다시 붙어 연장접전 끝에 지긴했지만 대회의 다크호스팀으로써 체코의 저력을 톡톡히 보여주었다. 역시나 그 중심엔 네드베드가 있었다.(당시 예선 2차전 이탈리아전서 선제골을 뽑아내며 당당히 자신의 이름을 유럽에 알렸다.)
그렇게 아쉬움과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이 지나가고 그는 그 해에 세계최고의 무대중 하나인 세리에A에 도전장을 낸다.

유로대회가 끝난뒤 그를 영입하기위한 수많은 명문클럽들의 러브콜을 뿌리치고 그는 이탈리아의 라치오로 이적을 감행한다. 이탈리아를 상대로 골을 뽑아냈던 그는 이탈리아 축구에 자신감이 있어보였다.
그런 그의 자신감은 거짓이 아니었다. 당당히 세리에A에서 첫시즌 팀의 주전으로 부상없이 32경기를 출전했고, 첫 무대에서 7골을 집어넣으면서 곧바로 팀에 중심선수가 되었다. 이탈리아 축구계는 25살의 이 선수에게 놀라움을 금치 못했고,일부 언론들은 그가 로마의 영웅이 될것이다란 보도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의 끝은 어디인가?","그는 미드필더가 맞는가?" 라는 질문을 던질수 있을 만큼 그의 득점력은 대단했다. 두번째 시즌만에 10골을 넘어섰고,그것은 단순히 그가 팀의 에이스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도 했다. 98/99 시즌 결국 그런 그의 대활약으로 라치오는 컵위너스컵 결승에 진출했고,그는 스페인의 레알 마요르카와의 경기에서 결승골을 집어넣으면서 자신의 첫번째 최전성기를 구가했다.(또한 마지막 컵위너스컵 대회였기때문에 우승컵 영구보존의 영광도 라치오에게 주었다.)비록 리그에서는 잔부상치레를 하며 전시즌에 비해 다소 떨어지는 활약을 했으나,중요한 순간엔 역시나 그가 있었다. 그는 결국 자국에서 '올해를 빛낸 체코 선수상'을 탔다.
1991년 축구선수로써 평범했던 체코의 한 소년이 유럽을 점차 평정해 가고 있던 것이었다.

99/00 시즌은 그에게 평생 잊혀지지 않는 최고의 시즌이었다. 그는 이미 팀의 공격을 이끄는 엔진이었고,라치오에게 팀 역사상 두번째 스쿠뎃토를 선사했다. 그것에 그치지 않았다. 그는 라치오를 코파 이탈리아 결승에도 진출시켜 더블의 영광까지 선물했다.
그러나 그런 그에게 첫번째 시련이 다가왔다.

유로2000에서 체코 대표팀이 4년전과는 달리 탈락의 고배를 마셨기 때문이었다. 대표팀에서의 실패를 딛고,심기일전해 준비한 00/01 시즌 31경기 출장 9골의 좋은 활약을 펼쳤으나 감독의 경질과 위조 여권 파동이 겹치면서 팀이 리그 3위에 머물렀고,본인도 여러가지 문제를 겪게되면서 정신적으로 힘든 시즌을 보내고 말았다.

한편 이탈리아의 명실상부 최고 명문팀인 유벤투스는 계속되는 스쿠뎃토 열망에 대대적인 리빌딩에 들어가면서 팀에 중심선수였던 지네딘 지단을 스페인의 명문 레알 마드리드로 팔아버린다.(본인도 유베에 더이상 머물고 싶지않다고 밝혔었다.)어쨋든 그렇게 새로운 바람이 유벤투스에 불고있었고,명장 마르첼로 리피는 지단의 대체자를 그로 생각하고 있었으니..
그가 바로 상대팀 라치오의 '핵' 파벨 네드베드였다.

사실 네드베드 본인도 유벤투스행에 많은 고민을 했다고 한다. 라치오의 재계약 문제와 팬들의 아성도 뿌리치기 힘든 것이었다. 더군다나 리피는 그에게 지단을 대체해줄것을 원했고,그 또한 그것을 너무나 잘 알고있었기 때문이었다. 지단이 유벤투스에게 공헌한 많은 업적들과 이적한 후에도 식을 줄 모르는 그의 인기에 그도 입지적인 면에서 고민했던 것이었다. 충분히 부담을 가질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그는 최종적으로 리피의 '뉴 프로젝트'에 합류하기로 결정한다. 다음은 이적 결정후 토리노에서 첫 인터뷰중 네드베드의 말이다.

네드베드曰: "솔직히 이 정도로 따뜻하게 맞아주실 줄은 몰랐어요.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오랫동안 라치오에서 플레이 해오며 저는 여러분들의 '적'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게다가 전 유난히 유벤투스를 상대로 많이 득점을 해왔으니까요. 그런 저에게 이렇게 반갑게 맞아주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최선을 다해 유벤투스에 또 다른 승리를 가져다줄수 있도록 노력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누구도 지단을 대신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는 대단히 뛰어났으니까요. 하지만 새로운 환경에서,새로운 시스템으로도 충분히 지단 시절 이상의 성적을 올릴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델 피에로와 트레제게가 득점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데 집중하고 싶습니다."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2001/2002 시즌은 그에겐 새로운 도전이자,새로운 영광의 초석이었다. 우리나라 나이 30살의 노장축에 드는 그는 자신이 아직도 살아있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에게 증명했다. 항상 착실히 준비하고 노력하는 선수여서 일까? 그는 당당히 유벤투스의 첫시즌 32경기에 출전하면서 4골을 성공시켰고,그의 바램대로 델 피에로와 트레제게에게 많은 어시스트를 해주었다.
시즌 초반 팀 적응 문제로 고생을 했지만 그래도 점차 자신의 역할을 톡톡히 해나갔다. 그리고 그가 그런 좋은 활약을 펼칠수 있는데에는 역시 리피의 공도 컸다. 리피는 그에게 공격쪽에서의 다양한 포지션을 제공해주었다. 주 포지션인 공격형 미드필더와 함께 왼쪽 윙 가담과 포워드 자리 등등 네드베드의 재능을 마음껏 살려준 것이었다. 또한 간간히 팀에 골이 필요로한 순간에 그의 장기인 폭발적이고 파워풀한 중거리 슛은 그의 최대무기이자 다시금 그에게 자신감을 줌으로써 최정상 컨디션을 끌어올릴수 있었던 것이었다.

결국 유벤투스는 네드베드에 힘입어 01/02 시즌 스쿠뎃토를 차지할수 있었다. 역시나 베테랑 답게 한 시즌동안 그는 팀에 자연스럽게 적응하고 녹아들어갔고,다음 시즌인 02/03시즌에도 또한 대활약을 펼치면서 팀에 27번째 스쿠뎃토를 선사했다. 특히나 그는 챔피언스리그서 유벤투스를 결승전에 올려놓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지단이 지휘하는 레알 마드리드와의 챔피언스리그 4강전서 그는 지단과 비교될 정도로 뛰어난 활약을 펼치면서 팀을 결승전에 올려놓았지만 맥마나만에게 결정적 태클을 하며 불필요한 경고카드를 받으면서 결승전에 출전하지 못하게됬고,그는 끝내 경기가 종료된 후 그라운드에 엎드려 통곡하기도 했다. 아직도 유벤투스팬들은 02/03 시즌 CL결승을 회고하면 네드베드의 부재를 아쉬워하곤 한다. 그만큼 그의 챔피언스리그 우승에 대한 열망과 승부욕은 지나칠만큼 그 누구보다도 높다.(필자도 그 장면을 보면서 아쉬움을 감출수 없었다.)

그런 그의 팀에 대한 충성심과 열정을 높이 산것일까? 그는 2003년 전세계 축구선수라면 누구나 한번쯤 꿈꿔보는 '유럽 최우수 선수상'을 수상했다. 경기가 풀리지 않을땐 본인이 직접 화려한 드리블로 골을 넣어 경기력을 끌어올리고,상대 수비가 자칫 공간을 내주면 그 기회를 놓치지않는 순간적 판단력,양발을 이용한 빠른 패싱,강력한 중거리 슛등 그런 그의 모습들은 유벤투스에게 있어서 이제는 더이상 없어선 안될 존재가 되 버렸다.

비록 다음 시즌인 03/04 시즌엔 팀이 리그 3위에 위치하며 그의 활약이 빛에 바랬지만,유벤투스의 모든 팬과 보드진들은 네드베드의 기복없는 플레이를 칭찬하지 않을수 없었다.

네드베드가 세번째로 참가한 유로2004는 체코축구의 저력을 또다시 보여주었다. 체코는 죽음의 조라 일컬어지는 D조에 속해 독일과 네덜란드와 같은 조에 속하게 됬고,피할수 없는 대결을 벌여야만 했다. 하지만 3전 전승을 거두는 기염을 토하며 결국 8강에 진출했다. 다시금 유로96의 영광을 재현할수있는 순간이 다가왔지만 네드베드는 뜻하지 않는 부상을 당해버려 그리스와의 4강전에 출전하지 못하게 되었고,결국 체코는 4강의 문턱에서 우승의 꿈을 접어야만 했다.

2004/2005 시즌에 유벤투스는 AS로마의 명장 파비오 카펠로 감독을 영입하면서 새 시즌을 준비했는데,네드베드가 라치오 시절 더비팀인 AS로마를 상대로 좋은 활약을 펼친것에 매번 당해야했던 카펠로와의 재회였다. 누구보다도 서로 축구에 대한 전술적 생각을 꾀뚫고있는 네드베드와 카펠로 감독의 조합은 유벤투스로서 새로운 옵션이 되었고,결국은 1년만에 다시 스쿠뎃토를 되차지하는 영광을 누렸다. 그러나 네드베드가 그렇게 열망했던 챔피언스리그 우승은 또 다시 8강의 문턱에서 좌절되었고 다음 시즌을 준비해야 했다.

후에 그가 축구계에 큰 별이 되고나서 '정신병자'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에서 벗어나 '두개의 심장을 가진 사나이','철인'이라는 별명을 가지게 된 네드베드는 그 누구보다도 축구에 대해 열정적이고 헌신적이다. 그리고 또한 최고의 선수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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